▣ 도서개요 : 천성래 장편소설 『 텐트를 치는 여자 ① ② 』
▣ 출 판 사 : 태영출판사(泰營出版社) 영북스
▣ 작가의 말
소설쓰기를 업으로 삼은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첩첩 산중에서 죄인처럼 숨어 쓰기를 하거나 파도 쓰르렁거리는 어부의 집 뒷방에서 난파당한 심정으로 소설을 썼다. 사람들의 얘기를 보따리 속에 뭉뚱그려 가지고 갔다가 펼치지도 못하고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적이 여러 차례였다. 아아, 내가 가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이야기 보따리가 부끄러웠다.
내가 산중 암자에서 도량 스님을 만나 그것을 깨닫기까지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오징어발이를 나갔다가 갑판 위에서 부르는 어부의 사랑가를 듣고 나는 곧장 보따리를 다시 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소설보다 찐한 사람들의 얘기가 어디서나 내 발목을 붙들었다. 나는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 이것은 정말이다. 내가 계획한 삶의 이정표가 한없이 한없이 부끄러운 여름날의 행보, 인
생의 위대함을 삶의 한쪽 끄트머리에서 발견하고 허탈했던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이 슬프고 막막했다.
그동안 내가 부렸던 것은 모두 허세였다.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지랭이 삶들을 그저 별것 아니게 단정해버린 내 무지함, 나는 어째서 지치고 보잘 것 없고 땀내 나는 사람들을 마음의 중심에 담아놓지 못했는가. 아아,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일단의 무리가 갑자기 방파제 아래서 그물 깁는 이 빠진 노인보다 위대할 것 없음을 깨닫는 순간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세상의 잣대를 나는 여태도 버리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늙은 해녀의 숨찬 한숨소리가 어떤 훈장보다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한 줄의 글도 더 이상 쓰지 못하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던가. 아름답고 위대하던 훈장들을, 훈장을 자랑한 일단의 무리들을 마음 속에서 몰아내고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가벼운 것들과 모든 별 볼일 없는 삶들과 모든 무지랭이들의 넋두리를 원고지 속에 가두기 시작했다. 아아, 나는 집필 내내 무슨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이들을 호령했던가. 2500매의 원고지 속에서 내가 거둔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되돌아보면 러셀의 조약돌 하나가 주는 철학만도 못한 기만이고 사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나는 슬프다. 소설 속으로 본의 아니게 이끌려와서 의지와 관계없이 억지 행동을 하고 더러는 바다 속으로 먼 산 너머로 노을처럼 사라져간 사람들, 나는 죽어도 이들의 용서는 모두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아, 노을이 저물녘에 정해진 시간 안으로 마땅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만은 없는 것인데 감히 내가 무슨 권리로 이들에게 덫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발표할 때마다 나는 작품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번에도 의도와는 다르게 변명투가 되고 말았다. 결코 적지 않은 소설들을 써왔지만 갈수록 소설이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어떤 사람들은 내가 소설을 쓰다가 지쳐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여기서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나는 그나마 이렇게라도 소설을 쓸 수 있기에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빵과 옷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소설로 빵과 옷을 모두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제껏 내 영혼을 메마르게 하지 않은 요술 램프와도 같았다는 생각이다.
소설이란 뭐 대단할 것도 없다. 쏟아져 나온 거의 모든 소설들이 사실은 백짓장 한 장 차이도 없다. 그게 따분해서 사람들은 온갖 옷을 입혀서 새롭게 포장을 한다. 우리가 혹은 그런 포장 때문에 거만하지는 않았는가. 당신의 옷보다 값나가고 화려하다고 자만하지는 않았는가. 이쯤에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리란 생각이 앞선다.
작품에 대한 일체의 변명은 이제 삼간다. 이미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사람들로부터 받을 돌멩이 세례도 각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것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나는 그럴 정도로 성큼 삶을 살아버렸던 것이다. 내 나이 올해 마흔 셋,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얘기는 작가인 나로서도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과 세상의 가장 작은 것들과 세상의 모
든 무식한 이들과 세상의 모든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과 그저 소처럼 일밖에 할 줄 모르는 길모퉁이 한 켠의 모든 잡초들에게 이르노니 세상의 어떤 위대한 훈장도 당신들 앞에선 위대할 수가 없다. 당신들의 한숨과 눈물과 짜잔하고 못남과 가난과 고통과 패배와 흘러가 없어져버릴 모든 모퉁이 존재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2001년 저자 천 성 래 삼가 올림
▣ 작가 소개
작가는 전남 화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며 교육을 받았다. 화순, 광주, 안성, 서울 등지를 옮겨다니며 격정기를 보내다가 이상과 현실의 아노미 속에서 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해 헤밍웨이, 아우랠리우스, 희곡 작법, 소설 작법 등을 탐독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크게 감명 받았으
며 5년여의 습작기를 거쳐 이 십대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와 소설, 희곡 등의 집필에 들어 간다. 그의 문학적 화두는 인간의 존재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는 지금도 이 화두를 짊어지고 원고지 한칸 한칸을 메워나가고 있다. 작가는 동국대, 연세대 등에서 修學, 국문학, 행정학, 언론학 등을 전공했으며, 문학박사 학위 수여,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등 폭넓은 식견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 수양이 작품의 폭을 넓히는 데 적잖이 도움을 주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오늘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조약돌 하나에 머물며 잊혀져 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그런 바쁜 날들 가운데서도 작가는 각 대학과 문화센터 등에서 시창작론, 소설작법 등의 강좌를 개설, 문학적 열정을 쏟고 있다.
계간 <언어의 세계>에 중편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단편<도시새> 신인문학상, 장편<소설 단발령> 문예진흥원 창작기금, 단편 <거룩한 선택> 올해의 작가상, 연작소설<베틀> 5주 연속 베스트 셀러, 장편<고개숙인 남자> 스테디셀러에 오르며 사회적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월간<불교>에 구도소설<불타는 노을> 월간<헤드라인 뉴스>에 문화비평, 인터넷 방송 talknnews.com의 ch2에서 문화칼럼을 진행하고 있다.
발표작으로 장편<타배의 불춤> <베틀> <술꾼에게 보낸다>(전2권) <고개숙인 남자> <소설 단발령> <아름다운 날들>(전2권) 텐트를 치는 여자>(전2권)와 시집 1권이 있고, 창작집<거룩한 선택> <나룻배> 장편<훈장>, 문화비평집 <재미있는 문화이야기>를 출간할 예정이다.
▣ 차 례
<제1권>
작가의 말 3
가지 않은 길 9
익명(匿名)으로 사는 사람들 51
폐가가 보이는 언덕 94
개미 사육 134
초 대 191
작가 소개 271
<제2권>
작가의 말 3
뒤쫓는 자 9
이쪽과 저쪽 54
고백, 그 환희와 절망 105
고양이와 소년 199
길 모퉁이에 서서 263
작가 소개 280
▣ 작품 줄거리
재벌 2세인 김태욱은 IMF로 인해 자신의 사업체를 부도내고 집을 나와 아파트에서 혼자 살면서 방황을 한다. '미니스커트 황'과 '쫄바지 박'이라는 여자와 섹스의 유희를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아파트 뒤에 있는 '수치산'을 우연히 오르게 된다. 수치산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으로, 거기에서 견고한 텐트를 치고 사는 '임하영'과 만나게 된다. 김태욱은 임하영의 베일에 싸인 삶에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빨려들어가는데, 어느덧 스스로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놀라곤 한다. 그런 와중에 임하영과 관계가 있는 듯한 '밝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으로부터 협박성의 괴편지를 받게 되고 의문은 점점 더 증폭되어간다.
또한 아파트 수위가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고, 수치산에서 또 다른 인물, '김팔오'를 만나게 된다. 김팔오는 외팔이로서 떠나간 여인을 잊지 못해 날마다 수치산 언덕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김태욱은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맞선을 보게 되는데, 그 맞선녀인 '박희라'는 김태욱을 집요하게 좇아 다니며 김태욱과 임하영의 신분상의 차이를 말하며 태욱을 설득한다. 하지만 이미 임하영에게 깊이 빠진 김태욱은 그녀의 편집성적인 성격을 증오하게 된다.
그러던 중 임하영이 사회변혁운동을 하다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쫓기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된 김태욱은,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육체관계까지 맺게 된다. 한편 김태욱의 섹스파트너인 '미니스커트 황'은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그를 떠나지만, 또 다른 섹스파트너인 '쫄바지 박'은 급기야 김태욱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수치산의 여인, '임하영'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태욱은 어떻게든 박의 아이를 지우게 하기 위해 갖은
모략을 짜낸다. 마침내 심부름 센타를 통해 박의 아이를 지우게 하지만, 후에 박의 오빠로부터 박이 미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러한 때, 임하영은 김태욱의 출신성분과 그의 악질 부르조아적인 근성을 깨닫게 되고 김태욱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김태욱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임하영의 꿈인 해바라기 농장을 건설하며 그녀를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양평으로 떠난다. 양평에서 임하영을 기다리며 속죄하는 삶을 살던 중 김팔오가 죽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한 때의 방황으로 인해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쳤다는 죄책감에 '쫄바지 박'의 고향으로 내려가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에게 아파트를 처분한 돈 4억을 맡기고, 서울의 유명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자신은 양평으로 돌아온다.
그러던 중 꿈에도 그리는 임하영이 그를 찾아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게 된다. 임하영은 김태욱과 헤어지고 곧 바로 경찰에 체포된 후 집행유예로 풀려 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들의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김팔오의 무덤에서 '꽃다지'를 부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딸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향해 떠나는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로 가슴벅찬 감동을 만끽한다.
▣ 작품 분석
들어가며
중견 작가 천성래의 장편 소설인 『텐트를 치는 여자』는 그 소설적 한계와 책을 잘 읽지 않는 시장의 척박한 환경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한 작가의 진지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하다.
물론 전체 골격은 '속물 근성을 지닌 한 남자가 지고지순한 여자의 구원을 받아 새로운 인물이 되었고, 그 여자의 안식처가 되었다.'라는 전형적인 통속 소설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인간의 속물적 근성과 근원 의식을 폭넓게 다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단순한 통속소설로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를 듯 싶다. 적어도 작자는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의도가 역력히 보인다. 그 한 방편이 이상적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시각으로 작자는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논자는 이 작품의 성격을 통속소설이냐, 아니면 이념소설이냐를 규정하기 이전에 '소설적 휴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작가도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작품에 대한 일체의 변명은 이제 삼간다. 이미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사람들로부터 받을 돌멩이 세례도 각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것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라는 것은 작가 자신의 자신감의 소이가 아닌가 한다. 천성래의 문학적 모토는 원래 순수지향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소설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적어도 "안 읽히는 것은 소설이 아니다."라는 그의 정신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치산, 그 이상과 현실 사이
논자로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치산'이라는 관념을 주목하고 싶다. 적어도 발전 논리에 따른다면 존재할 수 없는 산임에는 분명하다. 수치산의 현실적 의미는 극복하기 어려운, 또는 반드시 넘어야 할 지형적인 경계를 뜻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적 의미로서 수치산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 중에 등장하는 수치산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경계를 내포
하고 있다.
첫째, 김태욱과 임하영의 경계이다.
김태욱은 악질 부르조아의 근성을 지닌 존재로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이다. 물론 작가는 이것을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애써 용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보습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만연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그와는 반대로 이 땅의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사회변혁운동을 하는 임하영은 김태욱과는 반대편에 서서 그와 같은 악질 부르조아들과 투쟁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서 김태욱이 수치산을 넘었다는 의미는 그 순간부터 이미 김태욱은 악질 부르조아의 근성을 서서히 버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그 원인은 임하영이라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둘째, 부르조아와 노동자의 경계를 의미한다.
90년대 초반 구 소련의 붕괴로 인해 사회주의는 역사의 퇴물로 사라졌다고 흔히 말한다. 그것은 철저한 자본주의의 시각에서만 그러한 것이다. 적어도 사회주의는 수면 아래로 잠수한 것이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의 기본 개념인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와서 낡은 마르크스 레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셋째, 속물과 엘리트의 경계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소위 '지식인'이니 '신지식인'이니 하며 식자층을 무조건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지식인=엘리트'라는 논리에는 반대한다. 엘리트라는 개념은 단순히 그 인간이 얼마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꿈과 희망을 얼마나 많이 간직하고 그러한 가치를 소중히 보듬고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인물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태욱이나 그 부모님, 또는 박희라 등은 전형적인 속물 근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반대로 임하영과 '밝사모'는 광범위한 엘리트의 모범으로서 이 사회의 변혁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치산은 이러한 두 부류의 전면적인 경계, 충돌의 장소로 인식되어야만 이 소설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넷째,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IMF로 인해 국내외의 경제 여건이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서민의 가정은 파탄이 나고 실질적인 국민 소득은 절반으로 줄어 들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대형 사건·사고와 정치권의 비효율성은 일반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20세기는 민족사적으로 민족 수난의 역사이고, 절망의 역사이고, 암흑의 역사인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과거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듯 힘에 겨운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과거의 굴레를 뒤집어 쓰고 한탄만 하고 살 것인가.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 바로 임하영이 소속된 '밝은 사회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러한 것이다.
또 하나의 동경
이 작품에는 두 가지의 동경이 등장한다.
첫째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남 주인공의 동경이 그 하나이고, 둘째는 이상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유토피아적 동경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대립이 증폭되고 소설적 재미를 더 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 하나하나가 각기 개성을 지닌 인격으로서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인물들 대부분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소설적 한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약간은 무리가 따르는 부분이 있는 점도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나 수위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박희라의 편집성
적인 성격 등은 일반 독자로 하여금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뿐더러 큰 울림을 주지는 못할 듯 싶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 모두가 약간씩은 정신병자로 밖에 이해할 수가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작가의 고도의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찰은 성큼 커버린 작가의 의식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이기에 죄를 짓고 증오하고 남에게 누를 입히는 거지요. 저는 다시 태어나면 저 산등성일 저토록 평화롭게 넘나드는 구름 이거나 저 산에 피어나는 들꽃이거나 지나가는 바람을 부리로 쪼며 노래하는 새이거나……."
( 중 략 )
"수치산은 날고 있는 학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비로소 어디론가 힘차게 날아가는 그런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숱한 세월 얼룩진 무늬를 순백의 이불로 덮은 세상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서슴없이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이 대목이 바로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깊은 근원의식을 나타내는 압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용서이지, 이념이나 통속적인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사고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맺는 말
이 작품의 전체 주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속물 근성을 지닌 한 남자가 지고지순한 여자의 구원을 받아 새로운 인물이 되었고, 그 여자의 안식처가 되었다.'라는 대부분의 소설적 설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또한 작가의 의도와는 별도로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건은 많은데 주인공의 인물 설정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것도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이 소설은 재미가 있다. 특히나 작자의 이야기 전개 능력은 압도적이며, 전체 내용은 흥미 있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대중 심리를 얻는 데는 무난할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IMF로 인한 가정 파탄과 인간성 상실을 다뤘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다.
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지배계층에 대한 예리한 칼날에서 천성래의 소설적 천재성을 찾을 수 있겠다.
논자는 베스트 셀러의 작품성은 크게 신뢰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베스트셀러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첫째는 독자가 소설을 읽고 과거를 회상할 수가 있는냐가 관건이다.
둘째는 독자에게 얼마만큼의 감동을 주느냐에 있다.
마지막으로 적어도 소설이라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 세가지 조건 중에서 이 작품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겠다. 논자는 이 책을 손에 잡고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긴박하고 의문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위대한 문학 작품인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은 얄팍한 상술을 등에 엎고 독자를 우롱하는 책들도 부지기수다. 함량미달의 도서를 작가의 인지도만 갖고 책을 사는 우매한 독자층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적어도 문학작품으로서의 양서와 악서의 구분 기준은 '인간성, 즉 휴머니즘'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자는 작가 천성래에게 무한한 감격의 박수를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이와 같이 진솔하고 인간적인 문인은 우리에게 다시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부분의 문인들의 돈과 명예만 좇아 일희일비하는 이때에, 천성래 스스로는 이미 그 모든 것을 달관한 거대한 문인으로 우리 앞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소설이란 뭐 대단할 것도 없다. 쏟아져 나온 거의 모든 소설들이 사실은 백짓장 한 장 차이도 없다. 그게 따분해서 사람들은 온갖 옷을 입혀서 새롭게 포장을 한다. 우리가 혹은 그런 포장 때문에 거만하지는 않았는가. 당신의 옷보다 값나가고 화려하다고 자만하지는 않았는가. 이쯤에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리란 생각이 앞선다……."
천성래의 사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혼탁한 이 시대에 천성래 같은 문인 하나 보유하고 있는 우리 한국 문단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