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콘텐츠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볼거리로 가득했다. 스트리밍서비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시리즈부터 국민 마스코트로 부상한 ‘펭수’까지 영화, 드라마, 캐릭터 등 전방위에 걸쳐 신선한 콘텐츠가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사회비판 메시지


올해는 사회비판적인 콘텐츠가 큰 주목을 받았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풍자와 해학적 요소로 풀어내며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사진=JTBC
/사진=JTBC
상위 1% 상류층의 욕망과 갈등을 그린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불편한 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극 초반 입시 지옥에 대응하는 부모들의 집착에 집중했다면 회를 거듭할수록 ‘혜나’(김보라 분)의 광기 어린 시선과 욕망이 주를 이뤘다. 출세가 목적인 사교육의 폐해를 입체적으로 그려내 마지막회 23.8%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백꽃 필 무렵>은 미혼모 ‘동백’(공효진 분)이 사회적 편견과 맞서는 내용을 담았다. ‘용식’(강하늘 분)·‘종렬’(김지석 분)과의 삼각 로맨스에 연쇄살인마 ‘까불이’의 정체를 둘러싼 스릴러가 가미돼 매순간 긴장과 설렘을 교차 반복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마지막회에서 보여준 동백이의 짜릿한 한방은 드라마의 화룡점정이다.

신분 상승을 통한 캐릭터의 성격 변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10월 개봉한 <조커>의 경우 광대로 일하며 정신병에 고통스러워 하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의 심리 변화를 밀도 높게 그려낸다.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역시 가난한 가족의 생존기를 치열하게 담아냈다.

기생충 중 한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 중 한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조커>와 <기생충>은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행복감을 위해 살인하거나 신분상승을 위해 상대를 기망하는 캐릭터를 배치함으로써 어두운 내면의 잔인함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해석은 관객에게 맡겼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기생충>을 ‘올해의 영화’로 선정하면서 “기생충은 현대사회속 관계에 대한 우화”라며 “계급투쟁에 대해 날카로운 교훈을 정하는 공포영화이자 비극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믿고 보는 글로벌 IP

글로벌 콘텐츠 공룡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 한국 오리지널시리즈 <킹덤>을 통해 ‘코리아 좀비 신드롬’을 구현했다.

<킹덤>은 왕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의녀 ‘서비’(배두나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사회계층과 정치 권력에 대한 암투를 담아낸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끓인 고깃국이 사실은 인육이었고 그로 인해 ‘생사역’(좀비)이 전염병처럼 번지며 비극이 시작된다. <킹덤>은 배고픔과 권력을 향한 갈망이라는 본질을 다루면서 해외에서도 큰 공감을 얻었다.

킹덤. /사진=넷플릭스
킹덤. /사진=넷플릭스
‘지식재산권(IP) 부자’인 월트디즈니컴퍼니도 <어벤져스> 시리즈와 <겨울왕국2>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과 <겨울왕국2>는 각각 1393만명과 122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축포를 쏘아올렸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우주 최고의 빌런(악당) ‘타노스’(조슈 브롤린 분)와 어벤져스 멤버들의 끝장 전투를 그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선과 악의 이미지가 고착화된 만큼 다소 진부한 설정으로 흘러갈 수 있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반전을 더해 거대한 세계관의 대미를 장식했다.

6년만에 속편을 들고 돌아온 디즈니는 <겨울왕국2>를 통해 전편과 다른 메시지를 전했다. <겨울왕국>이 ‘엘사’와 ‘안나’의 성장기를 그렸다면 이번 영화는 가족애와 희망을 담아내며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시리즈의 인기를 업은 디즈니의 후속작들은 어김없이 흥행에 성공했다.

◆B급감성으로 접근

올해 콘텐츠업계를 관통한 또 하나의 핵심키워드는 ‘B급 감성’이다. ‘B급’이라는 단어의 존재감과 달리 현 세대의 B급 감성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대사를 유행어로 등극시킨 영화 <극한직업>은 1626만561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2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마약반 형사들이 거대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치킨집을 위장창업한다는 소재를 위트있게 풀어냈다. 나약하고 쓸모 없어 보였던 캐릭터들은 가벼운 존재감을 벗고 독보적인 활약을 펼친다. ‘무에타이 동양 챔피언’, ‘유도 국가대표 특채’, ‘UDT 특전사’ 등 다채로운 캐릭터 이력도 영화의 반전으로 꼽힌다.

EBS연습생 펭수가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아트리움에서 열린 영화 '백두산' 레드카펫 쇼케이스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EBS연습생 펭수가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아트리움에서 열린 영화 '백두산' 레드카펫 쇼케이스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기자
EBS를 넘어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펭수’ 캐릭터도 B급 감성의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를 통해 첫 선을 보인 펭수는 김명중 EBS 사장을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2030세대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귀여운 펭귄 캐릭터의 외형과 달리 감정의 희로애락을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직장인의 억눌린 감정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튜브 채널 ‘유병재’의 ‘창조의 밤-표절 제로’ 영상에서 처음 등장한 ‘카피추’(본명 추대엽)의 경우 ‘카피는 모른다’는 설정과 달리 표절수위를 넘나드는 개사곡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가요계에 만연한 표절시비를 유머로 승화하는 동시에 카피추만의 유머코드를 녹여내 입체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올해의 미디어 10대 키워드’를 발표한 미디어잡의 관계자는 “개인주의시대에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재미와 웃음을 찾는 경향이 더 짙어지는 것 같다”며 “내년 방송·미디어 분야에서도 진지하고 무거운 콘텐츠보다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함을 강조한 작품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